An Island Made by Swimming
헤엄쳐 만든 섬
2020년 여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머물던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프리울섬에 들렀다.
배를 타고 도착한 프리울섬은 황량하고 아름다운 바위섬의 모습이었다. 작은 해변이 보여 내려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가지고 온 카메라를 둔 채 물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섬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서 물에서 빠져나왔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 섬을 빙 둘러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풍경과 마주했다. 그리고 문득 이 섬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누군가를, 그 도착의 순간이 떠올렸다.
‘그 순간도 꼭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 거야.’
헤엄쳐 도착한 섬. 새처럼 바위에 한가로이 앉아 섬의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섬에 도착한 사람이 되어 사진을 찍었다.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보였다. 멀어진, 작아진 문명의 흔적들이 보였다. 내가 사는 시간의 풍경. 그리고 다시 앞으로 돌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섬의 모습을 보며 필름 한 롤을 다 썼다.
그날의 흑백 필름은 이미 사진을 찍기 전에 바닷물에 푹 담갔던 필름이었다. 당시 나는 필름에 우연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사진을 찍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과정을 겪은 필름은 어떤 흐릿한 기억의 장면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나는 희미한 이미지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있었고, 이 과정은 내게 멀어진 시간을 적셔내고 건져내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희미한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 관해 말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비워낼 것들이 있었다. 내게 물의 이미지가 끝없이 반복적으로 다가오던 시간이 있었다. 그것들을 이어 붙이면 내가 걷고 돌아보며 헤엄쳤던 바닷가의 지도를 그릴 수도 있었다. 마침내 그 불어난 이미지가 내가 있는 공간까지 잠식해서 가득 찼던 날, 지금껏 겪어온 그 물의 시간들이 모두 내가 겪어야만 했던 과정이며 정화와 침례 의식임을 깨달았다. 실제로 그 일을 지나고 나는 새로운 삶의 지점에 닿을 수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으로부터 건져 올려진 것처럼.
다시 섬을 찍은 필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필름 한 롤에 내가 그 섬에 다녀온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나는 24장의 장면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직접 인화하기로 했다. 그 과정 또한 마치 내가 겪은 것과 같았다. 빛이 비추어지고, 용액에 적셔지고, 건져 올려지며, 그 위에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미지가 정착된 인화지는 세척되고, 건조된다. 섬의 풍경은 회색빛으로 정착되었다. 옅고 희미한 빛에서 메마른 풀과 바위, 바다와 하늘의 모습이 보였다. 장면의 경계가 무뎌져 있기도 했다. 그 요소들은 다시 전후가 없는 멀어진 기억의 어떤 부분들을 보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흔적들이 덧입혀진 이미지 앞에서 머나먼 시간을 떠올린다. 그 시간으로 유영하는 동안 거쳐야하는 겹겹의 생이 있다. 처음 섬으로 향하는 헤엄이 있었던 순간, 잠시 숨이 막혔던 순간, 섬에 도착한 순간, 그리고 푹 젖은 신체와 옷가지가 뜨거운 햇빛 아래서 마르는 순간까지. 그것을 모두 만지고 통과하며 펼쳐지는 시간에 닿는다. 사진을 찍고, 필름을 인화하고, 그리고 이미지 앞에서 그 언젠가의 나 혹은 어떤 이가 헤엄쳐 도착한 섬으로 거듭 돌아간다. 멈추었던 숨을 다시 쉬며 안도의 순간으로 도달한, 헤엄쳐 만든 섬.
2023.03.24 - 04.06
<헤엄쳐 만든 섬>
pluripotent art space
https://pluripotentartspace.com/exhibition/30
전시 전경 : 허유
헤엄쳐 만든 섬
2020년 여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머물던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프리울섬에 들렀다.
배를 타고 도착한 프리울섬은 황량하고 아름다운 바위섬의 모습이었다. 작은 해변이 보여 내려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가지고 온 카메라를 둔 채 물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섬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서 물에서 빠져나왔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 섬을 빙 둘러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풍경과 마주했다. 그리고 문득 이 섬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누군가를, 그 도착의 순간이 떠올렸다.
‘그 순간도 꼭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 거야.’
헤엄쳐 도착한 섬. 새처럼 바위에 한가로이 앉아 섬의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섬에 도착한 사람이 되어 사진을 찍었다.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보였다. 멀어진, 작아진 문명의 흔적들이 보였다. 내가 사는 시간의 풍경. 그리고 다시 앞으로 돌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섬의 모습을 보며 필름 한 롤을 다 썼다.
그날의 흑백 필름은 이미 사진을 찍기 전에 바닷물에 푹 담갔던 필름이었다. 당시 나는 필름에 우연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사진을 찍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과정을 겪은 필름은 어떤 흐릿한 기억의 장면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나는 희미한 이미지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있었고, 이 과정은 내게 멀어진 시간을 적셔내고 건져내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희미한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 관해 말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비워낼 것들이 있었다. 내게 물의 이미지가 끝없이 반복적으로 다가오던 시간이 있었다. 그것들을 이어 붙이면 내가 걷고 돌아보며 헤엄쳤던 바닷가의 지도를 그릴 수도 있었다. 마침내 그 불어난 이미지가 내가 있는 공간까지 잠식해서 가득 찼던 날, 지금껏 겪어온 그 물의 시간들이 모두 내가 겪어야만 했던 과정이며 정화와 침례 의식임을 깨달았다. 실제로 그 일을 지나고 나는 새로운 삶의 지점에 닿을 수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으로부터 건져 올려진 것처럼.
다시 섬을 찍은 필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필름 한 롤에 내가 그 섬에 다녀온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나는 24장의 장면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직접 인화하기로 했다. 그 과정 또한 마치 내가 겪은 것과 같았다. 빛이 비추어지고, 용액에 적셔지고, 건져 올려지며, 그 위에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미지가 정착된 인화지는 세척되고, 건조된다. 섬의 풍경은 회색빛으로 정착되었다. 옅고 희미한 빛에서 메마른 풀과 바위, 바다와 하늘의 모습이 보였다. 장면의 경계가 무뎌져 있기도 했다. 그 요소들은 다시 전후가 없는 멀어진 기억의 어떤 부분들을 보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흔적들이 덧입혀진 이미지 앞에서 머나먼 시간을 떠올린다. 그 시간으로 유영하는 동안 거쳐야하는 겹겹의 생이 있다. 처음 섬으로 향하는 헤엄이 있었던 순간, 잠시 숨이 막혔던 순간, 섬에 도착한 순간, 그리고 푹 젖은 신체와 옷가지가 뜨거운 햇빛 아래서 마르는 순간까지. 그것을 모두 만지고 통과하며 펼쳐지는 시간에 닿는다. 사진을 찍고, 필름을 인화하고, 그리고 이미지 앞에서 그 언젠가의 나 혹은 어떤 이가 헤엄쳐 도착한 섬으로 거듭 돌아간다. 멈추었던 숨을 다시 쉬며 안도의 순간으로 도달한, 헤엄쳐 만든 섬.
2023.03.24 - 04.06
<헤엄쳐 만든 섬>
pluripotent art space
https://pluripotentartspace.com/exhibition/30
전시 전경 : 허유